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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일동 황수원·김애순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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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마을센터 댓글 0건 조회 381회 작성일 20-05-26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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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출발하는 강동구마을지원센터가 2020년, 새로운 마을살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우리 마을 구석구석을 탐구했던 지난해에 이어 관내에 유관기관들을 알아보는 THEMA.1 마을공동체가 자란다,  마을을 살아가는 주민공동체의 활약이 펼쳐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가는 THEMA2. 마을을 움직이는 사람들, 강동의 과거에서 미래를 조망해 보는 THEMA3. 나의 살던 마을은 까지 세 가지 테마로 기획되었습니다. 

매주 화요일, 여러분을 강동사랑으로 이끌  시리즈 '강동을 살다',  많이 기대해 주세요!!!


THEMA3. 나의 살던 마을은 : 마을 어르신이 살아온 강동 이야기


 #6 _"사는 거? 별거 아녀. 지금이 제일 좋아요" 

       상일동 즐거운 오지라퍼 황수원, 김애순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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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에 들어서는 순간, 잠시 시간이 멈춰 버렸다.

AI가 사람을 대신하고 우주여행을 예약하는 21세기에서 갑자기 50년쯤 뒤로 물러선 것 같은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문을 열어준 황수원 씨는 78세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동안이고 함박웃음이 매력적인 김애순씨 역시 73세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는다. 현관 입구 비닐 망태에 들어있던 말린 먹고사리 냄새마저 강렬한 첫인상에 한몫했다.

황수원 김애순 부부가 현재 살고 있는 상일동 3층 다세대주택은 구천면로 100길에 있다. 구천면로는 변함이 없어 고마운 오래된 집과 동네를 이어주는 강동구의 보배 같은 길이다. 시간을 담은 길에 깃들어 살아서일까? 부부는 참 따뜻하고 다정하다. 그들을 닮은 집도 그래서 더 편안하고 정겹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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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을 거꾸로 간직한 듯 오래된 이 집의 대문은 늘 열려있다. 마실 가듯 누구나 들를 수 있고 주인이 없어도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는 동네 사랑방이다. 황수원 김애순 부부의 주위에는 사람들이 항상 들끓는다. 마을 사람들과 끊임없이 어울리며 늘 시끌벅적하게 살지만 지금이 딱 좋다. 상일동의 다양한 마을모임과 활동의 중심에는 늘 황수원 김애순 부부가 있다.

현재 새마을부녀회원이면서 게내마을어르신 경로당에서 매주 세 번 점심 대접을 하는 김애순 씨는 메뉴 짜기부터 재료 구입, 손질, 조리, 배식까지 마을 사람들과 직접 한다. 황수원 씨도 식재료를 사러 갈 때 늘 차량으로 동행하고, 은퇴 후 익힌 수지침과 마술공연으로 부인과 함께 봉사하고 있다. 황수원 씨의 마술공연은 경로당뿐 아니라 근처 유치원, 학교 행사에도 초대될 만큼 재미있다고 한다. 또 자격증까지 갖춘 수지침 실력으로 시립양로원을 비롯 강동구의 각 경로당과 요양원에서 꾸준히 봉사활동을 해온 결과 부부가 함께 모범구민 표창을 비롯 많은 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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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순 씨는 2017년 마을 공모사업에 대표 제안자로 참여했던 경험을 살려 올해 다시 경로당에서 어르신들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으로 도전했는데 선정됐다고 한다. "마을 사업에 참여하는 어르신들의 평균 나이가 80세이고 90이 넘은 분도 계셔요. 70대인 저는 완전 막내예요. 언니들이 마을활동을 하면서 모두 다섯 살씩 젊어졌으면 좋겠어요."


​▷은퇴 이후 참 즐거운 마을살이를 하는데 예전에는 어떤 일을 했나요?

▶약종상을 했어요. 지금 말로 하면 제약회사 세일즈맨이지요. 강동구, 송파구는 물론 경기도 광주, 하남 일대 약국을 돌아다니며 주문받은 약을 종로 3가 약전 도매상에서 구입, 다시 각 약국으로 배달하는 일이었죠. 병원 문턱이 높아 약국이 잘 되던 시절이었어요. 15년 가까이하다 보니 웬만한 약 이름은 다 외워지대요. 4만 개쯤 되려나? 덕분에 약국에서 관리약사로 일하기도 했지요. 온 데를 자전거로 다니려면 새벽 4시에 일어나 저녁 늦게까지 일해야 했어요. 나중에 오토바이로 바꿔서 좀 나아졌지만 그래도 종로와 강동을 하루에 두 번씩 오가는 게 쉽진 않더라고. 먹고살기 위해 했지만 힘들어서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황수원 씨 고생 말도 못 하게 했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가족 위해 정말 열심히 살았어요. 우리 작은 오빠랑 함께 일했는데 오빠가 사업 머리가 있어요. 마침 슈퍼가 유망하다고 해서 그때까지 하던 약 도매상을 접고 슈퍼를 함께 하자고 제안하대. 그게 잘 돼서 고덕동, 명일동, 풍납동, 암사동....또 어디더라? 여하튼 큰 규모로 여러 군데서 운영하다가 65세 때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일을 못 하게 됐는데 거래하던 앨범 회사 사장님이 황수원 씨 성실함을 인정해서 공장장으로 스카우트했어요. 70세까지 일하고 완전히 은퇴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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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열심히 살았군요. 그럼 자녀들은 어떻게 키웠나요?
▶남편이 한창 약 세일즈를 하던 73년, 75년 아들 둘을 낳고 둘째 아이가 돌이 지날 무렵 저도 암사동에 조그마한 의상실을 개업했어요. 고향에서 익힌 미싱과 재단 솜씨를 발휘할 기회가 생겼죠. 뷰티 의상실. 남편이 지어준 이름이에요. 근처에 광신 교통 30번 버스가 있어서 안내양이 주 고객이었어요. 기성복이 없을 때라 명절이나 여행 갈 때는 모두 옷을 맞춰 입었거든요. 그때 재미 좀 봤어요. 명절이 다가오면 한 달 전부터 야근하고 밤을 새곤 했어요. 친정, 시댁 조카들을 직원으로 데려다가 기술을 가르치며 같이 생활했죠. 한 달에 쌀 한 가마니를 먹고 김장을 두 접씩 했으니까. 살림에 보탬이 될까 해서 시작한 일인데 결국 암사동에 내 생애 첫 집을 마련하는데 성공했어요. 서울 와서 출세한 거지. 남편은 참 자상해서 그 힘들고 바쁜 와중에도 쉬는 날이면 오토바이에 아이 둘을 태우고 은고개 계곡, 광주천으로 데리고 가서 놀다 오곤 했어요. 내가 양장점 일하는데 신경 쓴다고 일요일에는 쉬라고 배려한 거죠. 지금 우리 아이들이 그때 아빠 나이가 됐는데 뒤돌아 보면 그때가 제일 좋고 재미있었대요. 아빠 오토바이 앞뒤에 타고 강가에 가서 고기 잡고 다슬기 잡고 밥해 먹던 기억 때문인지 둘째 아들은 열성 캠핑족이 됐어요. 일 년에 서너 번 가족캠핑을 꼭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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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구에는 어떻게 들어와 살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남편은 1943년, 충남 금산에서 태어났고 저는 1948년 전북 임실, 그러니까 임실치즈공장 바로 윗동네 깡촌에서 삼남매의 막내 외동딸로 태어났어요. 인연이 되려고 했는지 남편 둘째 형수 언니가 우리 동네로 시집와서 살고 있었어요. 황수원 씨는 제대하고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였는데 친정어머니가 딸 하나 시골로는 절대 시집 안 보낸다 생각하고 있던 차에 서울 사는 금산 총각 중매가 들어오니 이거저거 볼 것 없이 승낙해서 71년 2월 6일, 지금의 남편 황수원 씨를 운명처럼 만났지요. 그 무렵 작은 오빠가 강동구 천호동에 계셨기에 바로 옆집인 천호동 산 53번지, 지금 코롱 상가와 현대 플라자 근처에 신접살림을 차렸어요. 강동구에서만 산 세월이 50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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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를 강동구와 함께 했는데 당시 천호동 근처 풍경이 어땠어요? 지금이랑 많이 달랐죠?
▶그때는 길도 구천면길 하나밖에 없어서 광주 하남을 이 길로 다녔어요. 개발하면서 길을 넓히려 했지만 보상금액이 커서 대신 천호대로를 만든 거죠. 옛 어른들 말이 여기는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고 했대요. 이화벽돌공장, 태양금속, 파이롯트 공장에 광나루 사거리, 그러니까 지금 천호동 구 사거리죠 거기에 시외버스 종점이랑 천호시장이 있어서 굉장히 번화했어요. 지금은 복개돼서 전철이 다니지만 명일동 사거리에서 길동 사거리까지는 큰 개천이어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빨래하던 기억이 나요. 신혼집이 워낙 고지대여서 아기를 업고 천호시장에서 장을 본 후 올라올 때 힘들었어요. 집에서 조금만 더 가면 코뿌리산이라고 있는데 거기에 서면 사방 풍경이 다 보였어요. 길동, 명일동 전부 논이었고 특히 논 가운데 우뚝 서있던 명성교회가 생각나요. 근처에 미꾸라지 양식장이 있었고 장마가 지면 논도랑에서 새우며 미꾸라지가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양동이로 푸기만 해도 물 반 고기 반이었다니까. 집도 드문드문하고 판잣집이 대부분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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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에 살면서 특별히 기억나는 일이나 사건이 있으신가요?
▶결혼하던 다음 해인가 어마어마한 물난리가 났지. 72년도 여름인가? 정말 그 북새통은 태어나고 처음 봤어요. 지금 천호동 가톨릭병원 자리에 동춘서커스가 천막을 치고 상주했는데 호랑이가 튀어나와 거리를 돌아다니는 바람에 그놈 잡느라 경찰이 동원되고 우리들은 무서워서 집에서 꼼짝 못했지. 다행히 금방 잽히긴 했지만 천호동 구 사거리 깊숙이까지 물이 들어와서 온 사방 다 잠겼어요. 거기뿐인가? 암사동 풍납동도 완전히 침수됐지. 암사동 점마을(지금 암사정수장 자리) 근처에 있는 둑이 크게 터졌다 하더라고. 거기에 양돈장이랑 양계장이 많았는데 살아있는 돼지가 버둥버둥 떠내려오고 닭이 죽어서 둥둥 떠내려오면 그걸 건져 길에서 파는 사람도 있었어요.
▶처남네가 광나루 다리(지금 광진교) 근처에 살았는데 밤새 비가 와서 팔당물이 마을을 덮쳐 방 중턱까지 물이 찼어요. 어린 조카들을 구해 담을 넘어 우리 집으로 데려오고 어른들은 옥상으로 피신했어요. 광진교가 휘청거릴 정도로 물이 넘쳤다니까. 피해가 얼마나 심했는지 북한에서도 쌀을 지원해 줘서 수재민들은 받았다던가.
▶물난리가 끝나고 온 사방에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했어요. 개천을 복개하면서 암사아파트, 잠실아파트, 강동아파트, 명일동, 길동 아파트 단지가 막 생기더라고. 강동구 발전이 시작된 거지. 그 와중에 아파트 하나사놓을 생각을 못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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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구가 왜 좋은가요? 강동에서의 삶에 만족합니까?
▶천호동 1만 4천 원짜리 사글셋방에서 시작, 암사동에 내 집을 마련하고 이곳 상일동으로 와서 20년째 살지만 단 한 번도 강동을 떠날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일단 내 가족이 사는 터전이고 자연환경이 좋은 데다 복잡하지 않아서 참 살기 편했어요. 15년 전까지만 해도 고덕천 건너 삼성엔지니어링 자리가 모두 논밭이었다니까. 무엇보다 사람들이 좋아요. 나이 드니까 그렇게 나쁜 사람도 그렇게 힘든 사람도 없어요. 그냥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가면 다 품어지더라고.
▶제 남편이지만 황수원 씨는 참 가정적이고 자상해요. 가정의 소중함을 잘 알고 내 가족을 아끼는 마음이 큽니다. 그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니까 우리 집에 사람들이 편하게 오는 것 같아요. 어찌 보면 미련할 정도로 융통성 없이, 정석대로 정직하게 살아온 인생이지만 아무런 후회 없어요. 지금이 우리한테는 제일 편안하고 걱정 없는 황금시대랍니다.

​▷부인께서 남편을 너무 아끼시는데요?
▶과보호하죠. 느끼고 본 대로 삽니다. 이제는 내가 껌처럼 딱 붙어 다니는데 싸울 일이 없어요. 제가 마음을 비워 서기도 하지만 덤벼봤자 본전도 못 찾으니..... (크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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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원 김애순 부부가 매일매일 즐겁게 이웃들과 어울려서 사는 삶은 사실 그리 특별할 것도 유별날 것도 없다. 그럼에도 그들이 주변에 미치는 선한 영향력은 참으로 귀하게 여겨진다. 마을공동체가 별것인가? 김애순 씨의 말대로 '함께 밥 먹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나누고 힘든 사람을 신경 쓰고 보살피는 일이 당연하게 이뤄지는 공간이자 시간'이다. 두 사람은 이미 오래전부터 마을공동체를 살았고 남은 생도 마을공동체 안에서 이웃들과 신나고 즐겁게 살아갈 것이다.


​"칠십 넘으니까 사는 거, 그거 별거 아닙디다. 나이 들면 돈도 그리 쓸 일 없고 아프지만 않으면 돼요. 걱정 미리 당겨 하지 말고 지금 행복하게 살아요."


 <강동마을기록활동가  유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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