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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덕동 김종관&이경순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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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마을센터 댓글 0건 조회 376회 작성일 20-09-29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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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구마을지원센터가 2020년 새로운 마을살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우리 마을 구석구석을 탐구했던 지난해에 이어 관내에 유관기관들을 알아보는 THEMA.1 마을공동체가 자란다,  마을을 살아가는 주민공동체의 활약이 펼쳐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가는 THEMA2. 마을을 움직이는 사람들,​ 강동의 과거에서 미래를 조망해 보는 THEMA3. 나의 살던 마을은 까지 세 가지 테마로 기획되었습니다. 


매주 화요일, 여러분을 강동사랑으로 이끌  시리즈 '강동을 살다''  많이 기대해 주세요!!! 



THEMA3. 나의 살던 마을은 : 마을 어르신이 살아온 강동 이야기 



#18_"차고 달았던 물맛이 지금도 생각나요"


        고덕동 한우물 평생지기  김종관 이경순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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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경기도 광주군 구천면 고덕리 인근에는 가재울, 방죽말, 동자골, 동구비, 미역굴, 겨낙굴, 비석말, 바윗절 같은 이름을 가진 자연부락이 흩어져 있었다. 동구비 마을 논 한가운데 차고 달달한 물이 사시사철 솟아나는 자연 샘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이를 한우물이라 불렀다. 우물 주변에는 김해 김씨 본관을 가진 열다섯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살았다. 한우물은 마을 아낙네들이 밥물을 뜨고 반찬거리를 씻고 빨래를 하고 어두운 여름 밤에는 등목을 즐기는 식수원이자 동네 사랑방이었다. 우물물로 담근 김치와 동치미는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맛있고 시원했으며 가뭄에도 마르는 때 없이 물은 항상 차고 넘쳤다. 논밭은 드물고 온통 야산었던 고덕동에 대규모 주공아파트 단지와 주택가가 들어서면서 자연부락과 함께 한우물도 사라졌다.


◐그 남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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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와 여동생들 사이에서 외동아들로 자란 남자는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었다. 한우물 근처에서 태어나 군대 갈 때, 결혼 후 암사동에 신접살림을 차렸을 때 말고 여태껏 이 자리를 뜬 적이 없다. 고덕동 개발이 한창이던 80년 중반 즈음, 택지를 분양받아 2층 양옥집을 올릴 때도 한우물 가까이 지었다.

한우물 마을에서 조금만 나가면 한강과 고덕산으로 이어졌고 산 하나를 건너 방죽말 한참 너머에는 게내(=고덕천)가 흘렀다. 모두 살기 어려운 시절, 남자는 고덕산에서 버섯을 채취하거나 게내에서 밤새 잡은 민물 게를 새끼로 엮어 갯물(=한강 가 모퉁이의 마을, 현재 암사동 롯데캐슬 근처)로 나가서 팔아 살림에 보탰다. 최근 아파트 재건축으로 고덕산 자락 선산에 모셨던 조상묘를 퇴촌으로 이장하기 전까지 매해 시제를 지냈고, 100년 전통의 구천국민학교(=현 상일초등학교)를 졸업한 그 남자, 김종관(69)씨는 고덕동의 원주민이자 살아있는 역사이다.


◑그 여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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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세, 꽃 같은 나이였지만 당시로는 조금 늦은 결혼이었다. 또렷한 이목구비와 큰 키가 서구적인 느낌을 주는 여자였다. 호기심과 일, 공부 욕심이 컸던 여자는 결혼보다 세상을 더 많이 배우고 싶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외국인 회사에 들어가 형편이 어려운 집안을 돌보며 맏이 노릇을 야무지게 했다. 서울 금호동에서 나고 자랐고 종로구에 원적을 둔 그는 집과 회사만 오가며 교회를 열심히 다니던 전형적인 서울여자였다. 착실함을 눈여겨본 교회 장로의 중매로 경기도 광주군 구천면 고덕리 한우물 마을에 사는 남자를 만나 백년가약을 맺었다.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던 고덕리 한우물가 김해 김씨 종갓집 종부이자 외며느리가 된 여자는 사시사철 시제(時祭)와 일 년에 열두 번이 넘는 제사를 혼자 감당하며 시부모를 모시고 두 아이를 키웠다. 너무 힘이 들어 보따리를 싼 적도 있지만 아이들이 태어나고 다들 이렇게 사는 거라 여기며 이렁저렁 세월을 쌓다 보니 어느새 반평생이 다 지나 버렸다. 고덕동으로 시집와서 사십여 년 넘게 살고 있는 그 여자, 이경순(66)씨도 차고 시원했던 한우물의 물맛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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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무엇을 하면서 지내는지 궁금합니다. 

▶다들 마찬가지겠지만 코로나 때문에 사람 만나는 일은 되도록 피하고 있어요. 매일 새벽 미사를 다녀와 동물들을 돌보며 남편과 주로 집에서 지냅니다. 우리 사랑이와 평화 좀 보실래요? (평화는 토끼, 사랑이는 놀랍게도 13년 된 사막거북이었다! ) 얘네들 말고 열대어도 키우고 길냥이도 챙겨요. 날 닮았는지 딸아이도 고양이랑 기니피그를 잘 키우네요. 그동안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과 인문학 공부를 하며 재미있게 지냈는데 모두 올 스톱 됐어요. 아래층 사는 친손주들, 유치원이랑 학원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일을 남편이랑 번갈아 하고 함께 놀며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고덕동에 거주한 지는 얼마나 됐나요? 어떻게 강동과 인연을 맺게 됐죠?

▶79년 2월 17일, 결혼하면서 강동구에 들어왔어요. 당시 고덕은 사람들 사는 곳 말고 온 사방이 나무와 숲, 언덕으로 둘러싸인 산골이었죠. 인사드리러 오는데 깡깡 시골 한가운데 번듯한 ㄷ자 기와집이 시댁이더라구요. 대대로 농사를 지어온 김해 김씨 집성촌이고 고덕산 자락에는 조상들을 모신 선산이 있었어요. 도심에서만 살았던 내 눈에는 전형적인 농촌으로 보였어요.

 

▷두 분은 어떻게 만나게 됐나요?

▶부잣집 외아들인 줄 알고 왔는데... (웃음). 회사 열심히 다니며 신앙생활하는 모습을 예쁘게 본 교회 장로 부부가 다리를 놓았는데 결혼 생각이 없던 때라 처음에는 거절했어요. 어느 날, 자기 집에 잠깐 들르라 해서 갔더니 시어머니 되실 분이 계셨어요. 단정하게 쪽을 진, 단단해 보이는 어른이었는데 우리 집에 오면 평생 편하게 살 수 있다고 설득하시더라구요. 결혼 준비가 안됐다고 하니 몸만 오면 된다고, 그러면서 결혼을 밀어붙이셨어요. 나 만나러 남편이 우리 동네로 오고 이후 사주단자가 오가고..... 인연은 인연이었는지 결혼하게 되더군요. 시댁은 유교 집안이었는데 천호동 예식장에서 목사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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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살게 된 강동구 고덕동은 어떤 동네인가요?
▶그냥 참 좋은 곳이에요. 절대 떠나고 싶지 않은 동네이기도 하고. 고덕산이 마당처럼 보이고 조금만 나가면 한강이니 산과 물이 이렇게 조화로운 곳도 드물죠. 쉴 수 있는 공원이나 녹지, 놀이터가 많아 공기 좋은 건 말할 것도 없구요. 무엇보다 사람들이 순하고 정이 많아요. 오래 살아서인지 꼭 옛날 마을 같습니다. 아, 옛 마을 맞네. 한우물마을. 또 모텔이나 유흥가가 없고 주택이나 아파트뿐이어서 깨끗하고 조용합니다.
▷집이 굉장히 크고 튼튼해 보입니다. 언제부터 사셨나요?
▶80년대 개발바람이 불면서 야산을 밀고 아파트랑 주택가가 많이 생겨났어요. 그때 택지를 분양받아서 이 집을 지었죠. 벌써 35년 넘게 살았네요. 현재 이마트 자리에서 보면 우리 집이 훤히 보였어요. 아래층에는 결혼한 아들네가 살고 반지하랑 길가 쪽 작은 상가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지냈는데 지금은 모두 비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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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옛 마을에 산다 했는데 옛날 고덕동 풍경을 기억하시나요?
▶고덕동 옛날 모습이야 남편이 정말 잘 알지요. 고덕산은 지금보다 훨씬 우거졌고 고덕역, 명덕 교회, 우성원 주변은 모두 산이었어요. 지금 명일역 사거리에서 버스를 내리면 딱 경운기 다닐만한 산길을 따라 우리 집까지 삼, 사십 분 걸어와야 했는데 밤에는 무서워서 다닐 수가 없었죠. 또 마을 공동우물이었던 한우물에서 떠올린 물맛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요. 시어머니가 그 물로 담근 동치미랑 김치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임신했을 때 다른 사람들은 김치냄새도 못 맡는데 나는 숨겨놓고 먹었다니까요. 동네 형님들이랑 밤에 함께 목욕하던 일, 만삭의 배로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를 하느라 힘들었던 일이 한우물 하니까 떠오르네요. 산 하나 넘으면 함종 어 씨들이 많이 살았던 생각도 납니다.
▶지금은 고덕 1동이지만 옛날에는 한우물마을이라 했어요. 여기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어요. 나이 드니까 옛날 생각이 더 또렷해지네요. 고덕천 귀신계니 바우백이산이니 방죽말을 기억하고 이야기할 고덕동 진짜 토박이들은 죽거나 나이 들어서 이제 몇 명 없어요.
▷기록의 중요성을 느끼게 합니다. 기억하는 고덕동 옛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고덕동은 산과 물을 빼고 이야기하긴 어려워요. 한강이랑 게내(=고덕천)에서는 물고기와 조개, 게가 많이 났는데 민물 게는 요맘때, 그러니까 논바닥에 물이 빠지면서 벼가 고개를 숙이는 늦가을 무렵에 특히 잘 잡혀요. 논에 살던 게가 하천으로 기어 나올 때를 기다려 미리 그물을 치고 가마니를 깔아놓은 다음 밤을 꼬박 새며 지켜야 해요. 하룻밤에 보통 50~100마리를 잡았는데 거짓말 안 보태서 거의 어른 손바닥을 덮을 만큼 컸어요. 민물 게가 그렇게 크다는 게 안 믿어지죠? 맛은 또 얼마나 좋은지 5~10마리씩 새끼로 묶어서 갯물에 내놓으면 순식간에 팔렸어요.
바우백이 산에는 떼뱀이라 부르는 밀뱀이 어찌나 많은지 건들면 이것들이 쫓아오기도 해서 사람들이 꺼려 했어요. 게내 근방이다 보니 습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고덕산에는 참나무랑 밤나무, 아카시 나무가 많아서 가을이면 열매를 따서 차례를 지내고 묵을 쒀먹거나 꽃으로 술을 담기도 했습니다.
▷귀신계는 뭐예요?
▶게내 하구 쪽 한강이랑 맞닿는 곳인데 접근하기도 어렵고 후미진 데다 대낮에도 인적이 드물었어요. 옛날에 여기에 나루가 있었는데 혼행길의 신부 일행이 강을 건너다 배가 뒤집혀서 모두 빠져 죽은 후로는 해마다 익사사고가 났대요. 가을 무렵에는 도깨비불같은 게 너울너울 날아다니기도 하고 귀신 봤다는 사람도 여럿이고... 어이구, 겁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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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고덕동도 홍수 피해를 입었나요?
▶그럼요. 한강에서 가깝다 보니 쉽게 물이 들어오죠. 비가 많이 오면 마당까지 잠겨요. 71년인가 암사동 둑이 터져서 강동구 전체가 잠길 때는 고덕동도 예외가 아니었어요. 그런데 홍수 피해를 막으려고 쌓은 한강둑 때문에 들어온 물이 오히려 빠지질 않아 잠기는 시간이 길어지기도 했어요.
▷지금까지 삶을 어떻게 말하고 싶은가요?
▶꿈을 제대로 펼치지도 못하고 아무 준비 없이 결혼해서 종갓집 살림과 오랜 시집살이까지 쉽지 않았지만 후회는 없어요. 내 몫의 인생이라 생각하고 누구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연극이랑 무용을 하면서 마음속 한이랑 내가 많이 부족하다는 자괴감, 그리고 내 욕심 때문에 아이들과 친정식구를 힘들게 했다는 죄책감을 풀어냈습니다. 점수를 준다면 50점을 주고 싶어요. 열정적인 성격이어서 문제가 생기면 돌파구를 찾아 끊임없이 움직이는 편인데 신앙생활이랑 마흔 살 넘어 딴 에어로빅 강사활동이 큰 도움이 됐어요.
▷급변하는 고덕동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나요?
▶고덕동 주택가 지킴이로서 자부심이 강했는데 요즘들어 가끔 흔들려요. 재건축 아파트의 가격도 그렇고 따라들어오는 편의시설 때문에 주택가 주변 상권이 불안합니다. 내 가족의 뿌리요, 고향인 고덕동에서 과연 편안한 노후가 가능할지 걱정이 커요. 주택가는 도시재생방법으로 개발을 진행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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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변하는 시대.
그 어떤 존재도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킬 때 가치가 있다. 자신이 태어난 자리에서 평생을 살아온 김종관 이경순 부부의 삶이 빛나는 이유이다. 고덕동 이야기를 이들만큼 애정을 담아 체화한 언어로 이야기해 줄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눈만 뜨면 달라지는 스카이라인과 주변 환경에도 불구하고 고덕동의 그 남자, 그 여자의 삶이 여전히 편안하게 이어지길 바래본다.

<강동마을기록활동가   유   수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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