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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촌동 약수터 마을 유이순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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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마을센터 댓글 0건 조회 261회 작성일 20-10-27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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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구마을지원센터가 2020년 새로운 마을살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우리 마을 구석구석을 탐구했던 지난해에 이어 관내에 유관기관들을 알아보는 THEMA.1 마을공동체가 자란다,  마을을 살아가는 주민공동체의 활약이 펼쳐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가는 THEMA2. 마을을 움직이는 사람들,​ 강동의 과거에서 미래를 조망해 보는 THEMA3. 나의 살던 마을은 까지 세 가지 테마로 기획되었습니다. 


매주 화요일, 여러분을 강동사랑으로 이끌  시리즈 '강동을 살다',  많이 기대해 주세요!!! 


THEMA3. 나의 살던 마을은: 마을 어르신이 살아온 강동 이야기



#21 _ " 약수로 병 고친다고 전국에서 왔어요"


                둔촌동 약수터마을 터줏대감 유이순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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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옛날, 강동구 둔촌동 일자산 기슭 약수터 마을 주변에는 광주 안씨 일가들이 많이 모여 살았더란다. 경기도 시흥 출신 유이순 씨(91)가 광주 안씨 작은 집 둘째 아들이었던 안종계 씨와 결혼해서 약수터 마을에 들어온 해는 1947년이었다. 세 살 차이가 졌던 남편이 2006년 80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59년을 해로했다. 사이에 시집살이도 할 만큼 했고 많이 잃기도 했지만 어쨌든 귀하게 얻은 3남 1녀도 잘 키워 모두 출가시켰다. 약수터 마을로 시집와서 73년이 지났지만 6.25전쟁으로 피난 떠났을 때 말고 이 마을을 단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다. 83년, 집을 크게 지어 옮긴 곳도 약수터 주변이었다. 조상들이 대대로 살아온 곳이기도 했고 광주 안씨 땅을 밟지 않고는 다니기 어렵다는 말이 있을 만큼 약수터 마을에 집안 땅이 많았기 때문이다.

유이순 씨는 그때 지은 큰 집에서 여전히 살고 있다. 둔촌 2동 그이 집은 동네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이 동네 터줏대감 할머니 집'하면 의례 유이순 씨네를 알려준다. 건물 공사로 주변이 시끌벅적하지만 대문을 여는 순간 집 안쪽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마치 시곗바늘을 40년 전쯤 거꾸로 돌린 듯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요즘 보기 드문 넓은 마당에는 규모가 제법 있는 텃밭과 잔디밭이 조성돼 있고 이곳저곳 심어진 유실수도 눈에 띈다. 지난여름 내내 따먹었던 오이 넝쿨 지지대와 하얀 몸통을 흙 위로 밀어올리며 싱싱하게 커가는 무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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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넓고 햇살 밝은 집, 방안으로 깊이 들어오는 햇볕이 하염없이 따뜻하고 포근한 집, 나무 한쪽 한쪽 이어붙인 쪽마루가 정겨운 집, 큰 며느리가 아침저녁 살뜰히 보살펴 주는 이 집에서 유이순 씨는 평온하면서도 행복한 말년을 보내고 있다. 몇 년 전부터 나타난 치매 증세 말고 특별히 아픈 곳도 없다.

▷집이 따뜻하고 넓어서 좋아요. 동네도 참 정겨워요. 둔촌 2동 대신 약수터 마을이라고 부르는데 이유가 뭔가요?

▶약숫물 때문이지. 저기 둔촌 고등학교에 가면 약수가 솟아나던 자리에 표를 해놨어. 물이 얼마나 좋았는지 온 사방에서 몰려왔어. 먹으면 화해서 부글부글 끓는 거 같았는데 온갖 병에 효험이 있다고 전국에 소문이 나서 많이들 왔지. 병을 고치려면 한창 있다 가야 하니까 동네에서 방도 내주고 밥도 해주고 그러면서 약수터 때문에 부자 된 사람들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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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도 그래서 부자 되신 거예요?

▶우리 시댁은 원래 이 동네에 땅이 많았어. 나는 아들 셋 중 둘째 며느리로 들어왔는데 시집에서 10년 살다가 야산 하나 받아서 분가했지. 개간한 땅에 포도 남구(나무)도 심고 그 아래에는 딸기를 심어서 열매가 나면 과수원 옆에서 팔았지. 남편은 일꾼들 데리고 농사를 지었고 살림이랑 과수원 농사는 내가 주로 했어. 하여튼 큰 살림이었지. 계란을 팔아서 살림에 보태려고 알 낳는 닭 열세 마리를 키웠는데 닭은 아래로는 내려가지만 위로는 잘 안 올라가. 큰 집도 길 건너 아래쪽에서 양계를 했는데 우리 닭들이 내려가서 섞여도 자기네 닭이라고 안 내놔.(웃음) 몸뚱어리에 빨간 칠로 표시도 했지만 소용없어. 한 번은 남편과 일꾼들이 먹을 밥을 내가다가 머리에서 미끄러져 길바닥에 죄 쏟아버리기도 했어.

질문과 대답이 어긋나자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던 맏며느리 이미현(59) 씨가 차분하게 정리를 해준다. 시어머니는 부지런하고 생활력 강한, 한마디로 여장부였다고 한다. 말이 없고 조용했던 시아버지에 반해 사업 머리가 뛰어나서 살림보다 바깥 일을 오히려 잘했다는 것이다. 다 지나간 이야기지만 수확한 포도를 팔다가 물량이 모자라면 다른 곳의 포도를 가져와 과수원산 포도로 판매하기도 했다고 한다.

▷약수터마을이 어떻게 부자가 됐어요?

▶병 고치러 사방팔방에서 온 사람들이 머물 곳이 필요하잖아. 그래서 집에 방을 들여서 전세를 놨어. 약물 먹으러 오는 사람이 많을 때는 안방이랑 마루도 내주고 나는 밖에서 잤지. 밥도 해주고 그러면서 돈을 벌었어. 다들 그렇게 부자 됐지. 전세사는 사람들이랑 잘 지냈어. 약물을 질으려면 큰 자전거를 끌고 가. 재밌는 이야기해 주까? 내가 아이를 갖고 인절미가 그렇게 먹고 싶어서 신랑한테 좀 사다 달라고 했더니 들은 체도 안 해. 그 이야기를 들은 세 살던 아주머니가 시장 가는 길에 떡을 사다 줘서 맛있게 먹으려는 데 글쎄 남편이 그걸 야곰야곰 먹지 뭐야. 그래서 싸웠어. 내참 우스워서....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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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군 구천면 둔촌리 약수터는 서울 부근의 유일한 광천 약수로 소문이 나서 일본강점기 때는 사이다 공장이 세워지기도 했고 6~70년대에는 왕십리나 신당동에서 식당 하던 이들이 동대문에서 광나루까지 다니는 기동차(=기차)를 타고 이곳까지 물을 뜨러 오기도 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전국 각지에서 생산하는 서* 막걸리 중 둔촌동 공장 생산품이 제일 맛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만큼 둔촌동 약수의 명성이 전국적이었다는 뜻이다. 실제로 일본강점기 때 발행한 엽서에는 둔촌리 광천 약수터를 찾아오는 방법을 그린 지도가 실려있기도 하다. 둔촌약수는 인근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면서 수량도 줄고 수질도 변해 80년대부터 더 이상 먹을 수 없게 됐다.

▷둔촌리 약수터 마을은 결혼하면서 들어온 거죠?

▶나는 없는 집에서 살았지만 일제 때 국민학교를 다녀서 한글도 알고 일본 말도 알고 편지도 잘 썼어. 당숙모가 시어머니랑 아는 사이여서 중신을 섰는데 시아주버니가 먼저 선을 봤어. 시아주버니는 내가 똑똑하다고 예뻐해 주셨지. 동갑내기 시누이는 부자집인데도 공부를 안 시켜서 까막눈이었어. 시집온 지 삼 개월 만에 남편이 군대에 가버려서 그 시누랑 한 방에서 살았네. 시아주버니는 6.25 난리 통에 있는 집 아들이라고 동네 사람들이 인민재판을 해서 산으로 끌고 가 줄지어 세워놓고 총살한 뒤 강동구 어디 골짜기 구뎅이에 버렸다고 하더라고. 거기서 죽은 척했다가 도망 나온 사람이 알려줘서 알게 됐어. 시어머니는 내가 복살머리가 없어서 시집온 지 삼 년 만에 대들보가 무너졌다고, 시아주버니가 죽은 걸 그렇게 타박하더라고. 남편도 군에 갔는데 복살머리 운운하며 머리를 쥐어 박히기도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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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었던 시집살이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전쟁이 나서 남자들은 죄다 군대로 끌려가고 여자랑 아이, 노인들만 남아서 함께 피난을 떠났지. 각자 이부자리랑 쌀 조금씩 이고지고 돈 2만 원씩 지닌 채 부산 쪽으로 갔는데 좁은 방에서 온 가족이 함께 잤어. 시아버지, 시어머니, 시동생, 시누이, 거기에 고골 사촌 시누이까지 정신없었어. 그런데 나랑 고골 시누이는 문 앞에 자리를 줘서 사람들이 드나들 때마다 밟히곤 했지. 서럽고 힘들어서 다시 둔촌리로 돌아가겠다고 하니까 다른 식구들도 다 따라나서대. 하여튼 십 년 정도 지독하게 시집살이를 했어. 자꾸 시아주버니 죽은 걸 내 탓을 하니까 나중에는 복 없는 건 형수인데 어머니가 잘못했다고 남편이 내 역성을 들어주더라고. 큰 동서는 너무 착한 사람이고 평생 일만 했어.

▷분가해서 살면서 시댁이랑 어땠어요?

▶큰 집, 작은 집, 우리 집 모두 약수터마을에 모여살았어. 온 사방이 논밭이었고 얕은 언덕배기도 모두 개간해서 논밭으로 썼어. 나두 개간한 밭에 포도나무랑 딸기를 심어서 팔고 양계도 하고 약수터 물먹으러 오는 사람들 받아서 밥도 해주고 그러면서 기를 쓰고 잘 살았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사는 대로 살았네. 둘째 며느리였지만 장사를 하다 보니 현금을 많이 만져서 큰 집에 일이 있을 때나 시아버지 아플 때 뒷바라지는 내가 다했지 머. 억척스럽게 살면서 일궈놓은 걸로 나도 편하고 자식들도 편하니 지금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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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구 둔촌동이 특별히 좋은 이유가 있어요?

▶내 사니까 좋은 마을이지. 사실 살기 바빠서 어디 갈 생각도 못 하고 동네 안에서만 살았어. 멀리 가면 멀미도 심하고.... 그래도 내 손으로 땅 일구고 살림 일으켜 먹고살아서 좋고 동네 사람들도 별로 싸우는 일 없이 다 좋네. 강동구에 홍수가 나면 여기까지도 물이 들어오긴 하는데 우리 약수터마을은 별 피해를 입지 않았어.

▷자녀들이 3남 1녀가 있는데 자랑 좀 해보세요.

▶뭘 자랑은.....시방 메누리는 아직 안 봤잖어. 봤나? (웃음 터진 며느리 이미현 씨를 바라보며)아, 메누리지? 큰 며느리로구나!(다 같이 크게 웃음. 참고로 이미현 씨는 87년에 결혼을 해서 지금까지 33년째 유이순 씨와 함께 살고 있다) 다 저희끼리 잘 살구 딸내미도 잘 살고(딸들이 낳자마자 바로 죽어서 하나 남은 딸 이름을 백년으로 지었다고 한다. 안백년). 이제 나 죽으면 고만이야. 얼른 안 죽어서 걱정이지. 꽤 오래 살어. 정신이나 있어갖구 오래 살면... 이제 소용두 없는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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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구에 70년 넘게 살면서 기억에 남을 만한 사건이나 일이 있으세요?

▶읎어.(웃음) 이젠 생각도 안 해. 그냥 살면 사나 보나 하지. 오래 사는 거야, 시방. 얼른 죽으면 좋지. 경로당도 안 나가 친구두 없어. 이가 없어 먹지도 못하고 매운 것도 못 먹고... 그런 거 못 먹으니까 안가. 집에서 이러다가 그냥 죽을라고.

▷집에서 하루 종일 혼자 계시면 심심하잖아요. 어떻게 지내는데요?

▶아침에 밥 먹으려고 일어나서 밥 먹고 화투패 넘기며 보내지. 고스톱을 엄청 좋아해서 함께 치는 동네 친구들이 있었는데 다 죽고 하나 남은 사람은 코로나 때문에 오가지도 못해. 날씨 좋으면 마당을 살살 돌기도 해. 텃밭농사할 때는 나가서 풀도 매고 고추, 가지, 호박, 무, 오이 같은 걸 심어. 근처에 사는 손주네 증손을 보러 가자고 며느리가 자꾸 권해도 잘 안가네. 친구들 부르면 그 사람들 대접하느라 며느리가 귀찮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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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기억하는데 조금 지장이 있긴 해도 유이순 할머니는 인터뷰내내 유쾌하고 시원시원했다. 요즘 태어났더라면 적어도 지역사회에서 알아주는 강소기업 CEO정도는 문제없을 듯 하다. 자신의 지난 삶에 큰 미련도 후회도 없지만 모진 시집살이의 기억은 쿨하고 시크한 그에게도 상처로 남아있는지 다른 이야기를 할 때도 여러번 묻어 나왔다. 본인은 하고 싶은 대로 다해서 행복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힘든 병이 치매라고 하는데 유이순 씨는 그런 느낌을 전혀 주지 않았다.

둔촌동 약수터마을에서 보낸 생애가 그런대로 괜찮았고 지금도 좋다는 유이순 씨. 그냥 사니까 사는 거라 말하지만 주어진 삶을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참 행복을 약수터마을 터줏대감 할머니는 제대로 누리는 듯 보였다.


<강동마을기록활동가  유  수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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