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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아카이브29] 암사3동을 다채롭게 만드는, 암3동예술동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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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마을센터 댓글 0건 조회 6,300회 작성일 18-07-23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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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아카이브29] 암사3동을 다채롭게 만드는, 암3동예술동호회

 

* 강동구마을공동체지원센터 2017 강동구 내 작은도서관과 교육의제 주민 모임을 아카이브 하고 있습니다. 간단한 정보를 담는 것을 넘어 각 작은도서관·주민모임의 특징과 이야기를 공유하기 위해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강동구의 작은도서관·주민모임의 이야기를 모으는 작업이 우리 마을을 더 풍부하게 할 것이라 기대합니다.  
* 총 10명으로 구성된 강동마을센터 아카이브 조사단 분들이 인터뷰를 진행해주었습니다. 조사단 분들과 인터뷰에 응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조사단 김정수

결혼과 함께 강동구에 정착했습니다. 어느덧 8살이 된 첫째 딸과 5살이 된 둘째 아들과 함께 성장하고 있는 마을활동가입니다. 첫아이를 갖고 보건소에 갔다가 엄마들과 인사를 하고 지내면서 강일동 공동육아를 하게 됐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돼 서로 나누고 베풀고 함께 즐기며 노는 품앗이를 하게 됐습니다. 이를 통해 지역을 알아 가게 됐습니다. 미혼 일 땐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가족이라는 새로운 삶이 이렇게도 특별하게 다가올지는 결혼 전에는 알지 못했습니다.
  
여러 공동체를 알아가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으로 희로애락을 공유할 수 있는 삶이 호기심이 되어 다양한 도전을 하게 됐습니다. 그 안에서 인생의 참뜻을 알아가게 됐습니다. 진짜 가족보다 더 좋은 이웃들과 함께 하게 되고 진정한 나눔이 뭔지 어떤 식으로 베풀어야 하는지에 대해 많이 배우고 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던 중 공동체의 씨앗기의 팀들에게 귀감이 되는 사례와 비전을 제시해 줄 수 있는 활동가로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내가 받아왔던 마을의 느낌을 공유할 수 있도록 열심히 알리고 다니는 오지라퍼로서 즐거운 강동구를 만드는데 힘쓰고 있습니다.

암사3동을 다채롭게 만드는 암3동 예술동아리

3 예술 동아리 정선임 대표님 먼저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유년시절 넉넉하지 않은 가정형편 속에서 미대를 꿈꾸었지만, 말조차 꺼낼 수 없어 스스로 상업고를 선택하여 부모님의 원망을 사기도 한, 책임감 강한 철이 빨리 들어버렸던 맏딸 정선임입니다. 
  
 상업고를 선택하고 빠른 취업으로 돈을 벌게 되었고 그러던 중 대졸자들과의 차별을 느끼기도 하여 뒤늦게 대학에도 가보았지만, 현실상 저에게는 사치스러운 자리였습니다. 대학도 바로 일 학기 후 자퇴를 결심. 바로 일터로 뛰어들게 됐습니다. 많은 일들을 하면서 꿈을 키워보고 싶은 열정과 욕심 많은 청춘시절이었기 때문에 주중에 일을 하고 주말에는 취미를 살려 뭐든 해보고 싶어 많은 정보검색 속에서 할 수 있는 활동들을 찾아내었고, 그중에 홍대예술인시장 서울페스티벌 뚝섬장터에서 시민작가로서 주말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만든 물건들을 팔기도 하고 가르쳐도 주면서 주말에 쏠쏠한 아르바이트비도 갖게 되고 행복도 찾게 되고 그때부터 제 시계는 고속으로 돌아갔지만, 그 순간순간이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그러던 중 저보다 힘든 환경에 있는 친구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서 시작하게 된 고아원 봉사활동에서 신랑을 만나고 5년 정도를 함께 봉사하며 사랑을 키우고 결혼도 하게 되었습니다. 
  
 결혼을 하게 되고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가 선천적으로 장이 아픈 아이로 태어나게 되어 태어난 지 1년 만에 큰 수술을 3번이나 받게 됐습니다. 그 안에서 저는 자꾸 아이와 저를 사회로부터 단절시키기 시작하고 하늘과 주변을 원망하며 철저한 이기주의로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 점차 아이가 건강을 회복하고 4살 즈음 둘째 아이를 갖게 되고 힘들을 잊을 때쯤 다시 찾아온 힘듦이 출산우울증을 동반하였습니다. 남편의 빠른 판단으로 아이들은 빠르게 어린이집으로 가게 되고 저는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4번 정도의 상담치료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왜 그랬나??' 싶더라고요. 
  
 그 후 생각하니 '열정 많고 욕심 많은 내가 가만히 4년을 보내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었답니다. 그래서 시간을 보내고 아이들과 행복할 수 있는 취미를 찾게 되는데 그것이 pop예쁜손글씨였습니다. 글을 쓰다가 아이들이 혹시 아프거나 다치거나 하면 바로 뛰어갈 수 있는.... 그래서 연락이 없을 땐 앉은자리 풀 안 날 정도로 글을 썼습니다. 행복했습니다. 4개 정도의 자격증을 이수하고 나니 더 이상 제가 재미지게 배울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또 생각했습니다.. 또 이것을 가지고 무얼 할 수 있을까?

 검색하다 녹색장터에 대해 알게 되고 그것을 실행하기로 했습니다. 빌라 주민들 동의를 얻고 구청에 전화를 걸어 신청을 했더니 빌라는 힘들다고.., 3동 주민으로서 아파트와 차별 없이 해달라 부탁했더니 때마침 취소한 분이 있다며 하게 해주셔서 녹색장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확실한 성과도 없었지만, 주민들과 소통하며 즐거웠습니다. 
  
 그렇게 장터가 마무리되면서 또 다른 무언가를 계획하고 싶었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나도 공간을 갖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에 얼마나 하나 월세를 물으러 부동산에 우연스레 들리게 되는데요. 그곳에서 생각보다 싼 월세에 가게를 덜컥 계약했어요. 그 후 6년이 지금 흘렀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공간의 주인이 되게 되었지요. 그렇게 지내며 부녀회로 시작하여 여러 봉사활동을 동네에서 시작하게 되었답니다. 이렇게 시작을 하면서도 마을공동체에 대해선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재능기부 참여를 하다 보니 그 재능을 인정받아 초등 돌봄방과후도 시작하게 되고 여러 일을 하게 되었는데 마을 공모사업 안내를 받아 시작해보게 되었습니다. 처음 암사 3동 예술동아리로 지원하여 예술인창작소로 진행하게 되었고 그 후 아름아름 알게 된 분들과 교류하던 중 마을공모사업의 추천을 부탁받아 저는 뒤에 물러서서 알려드리는 조력자 역할을 하며 오물조물손으로 놀자 진행을 알려드리기도 했습니다. 마을공동체를 진행하며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등도 어떤 것인지 관심이 가기도 했습니다.     

오물조물모임에 어떤 활동을 했는지요?
  
 오물조물은 그전에 예술인창작소로 활동할 적에 3개월 동안 21을 했고요. 주 3회씩 진행하였습니다. 그중 만들기 활동을 가장 많이 했습니다. 냅킨아트 우드아트 비즈공예 클레이 피오피 등을 이용한 활동들이 주가 되었고요 그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많이 참여하였습니다. 
  
 천일초등학교에서 돌봄교실 방과 후로 주로 활동하고 있고, 현제 공방에서 많이 활동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제가 다니는 교회에서 실버 예배 때 참가해서 만들기 봉사로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물조물 모임하면서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있다면 들려주세요참여하시면서 있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봉사란 누군가에겐 작은 멘토가 되어 줄 수 있는 듯해서 좋은 것 같아요.

 모임을 매회 하거나 인원 충원은 하고 있지 않지만요. 수업을 진행하면서 서로 소개하고 연결해주는 식으로 진행이 되더라고요. 이러한 활동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주변에 많은 화려한 자격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이 있어요. 그런 분들을 봉사로 연결해드리게 되고 그분들이 직접 학교로 연결돼 들어가기도 하고 연결해드리면서 서로 고리를 끊지 않고 있답니다. 
  
 모두 적은 금액으로 활동하시지만 의미를 가지고 일을 하시고 경단녀(경력단절여성) 벗어나 자부심을 가지고 무언가를 사회에 보탬이 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보기 좋았습니다. 타 지역에서 봉사하며 가르치던 아이들이 20살이 되어 지금도 가끔 만나면서 예전 이야기를 나누곤 해요.  봉사란 누군가에겐 작은 멘토가 되어 줄 수 있는 듯해서 좋은 것 같아요. 

 


모임 활동 중 힘들었던 점이 있었을 텐데 어떤 점이 있었을까요?
  
 강동구 내에 동마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각기 다른 동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사업에 참여하면서 꼭 암사 3동 내에서만 활동할 수 있는 사람을 찾으려니 쉽지 않았어요. 그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또한 마을공동체 사업을 하면서 아쉬운 건 예산이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예산인데 활용에 대한 부분을 적절하게 계획하지 않으면 사용 의도와 상관없이 진행되기도 하더라고요. 계획을 잘 세우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사업을 하다가 부족한 부분을 자부담으로 진행한 것도 있어요. 예산 부분에서 영수증 첨부나, 상점에 따른 제약이 조금 있었어요. 지정된 마을 기업의 상점이 있다면, 그쪽에서 재료비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해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함께하고 있는 오물조물 모임 분들은 공모사업을 처음 해보는 분들이에요. 그분들에게 조력자로 경험을 알려주면서 잘 진행할 수 있게 가이드 하는 것이 마음과 같지 않더라고요. 모임 활동이 잘 알려지지 않아, 사기가 떨어지는 현실에 조금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오물조물 모임은 계속 모임의 활동이 지속되고 있는지?

. 같은 곳을 보고 있지만,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서로 모여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모임을 따로 주기적으로는 하지 않고 있지만, 서로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시기에 언제든지 만나서 머리를 맞대고 서로 수업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같은 곳을 보고 있지만,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서로 모여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오물조물 활동을 하면서 스스로의 변화가 있었다면 어떤 것이 있었을까요?
  
 사업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하게 되었어요. 마을기업, 협동조합이 어떤지 사회적 경제가 어떤 의미인지 다시 한번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됐어요. 벌써 제가 공동체 4년, 녹색장터를 한지는 5년이 지났어요. 호기심으로 시작했던 일들이 의미 있게 발전 해 갈 수 있어 좋았습니다. 

 모임 내 서로 간의 정이 쌓이고 아이들과 소통도 하고, 초등 저학년들의 생각들도 알게 됐던 기회였어요. 함께 하는 분들도 아이들과 소통하고 어울리면서 본인 위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흐뭇해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항상 수업 후 아이들이 들려주는 우리 공방, 공간에는 항상 준비된 바구니가 있답니다. 아이들이 인사하러 들르면 줄 것이 없어 사탕바구니를 한쪽에 마련해 두었어요 자연스럽게 인사하고 한 알씩 집어간답니다. 정을 나누는 고리가 되었지요.
  
다른교육과 관련된 모임과 연계되거나 새로운 사람이 유입될 수 있을까요?
  
 사람 소개해드리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서로를 연결고리를 찾아 연결해드리는 것은 잘 하고 있답니다. 서로 필요하신 분들끼리 만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서로 간의 수익이 목적이 아닌 분들과 또 그것이 수익이 목적일지라도 작은 봉사로 연결되어 일하다 보니 서로 소통의 폭이 넓어졌습니다. 그리고 필요하신 분들이 있다면 얼마든지 연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을 활동을 하면서 좋은 정보가 있으면 많은 공유 부탁드립니다. (미소)

 

문의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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